• 메인 자료마당 경복궁 들여다보기 건청궁

건청궁

건청궁(乾淸宮 - 乾淸 : 하늘은 맑다) 전경   ▲장안당(長安堂 - 長安 :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내다)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 秋水芙蓉 : 가을 물속의 연꽃) 전경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坤寧閤 - 坤寧 : 땅이 편안하다),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녹산에서 본 건청궁

  담장에는 벽돌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꽃무늬를 꾸몄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지 않을 때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가롭게 휴식할 목적과는 달리 이 건물은 조선말기 정치적 혼란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 사이에 서재인 관문각은 러시아인에 의해서 2층 벽돌조 건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이 건물 곤녕합의 누마루인 옥호루(玉壺樓 - 玉壺 : 옥으로 만든 호리병)였다. 이 사건 이후 건물은 한 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되고 말았으며,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 건청궁 전경
1873년 향원지 북쪽에 지어진 별궁으로 벽돌조로 지어진 서재 관문각이 보인다.

 
  ▲ 곤녕합 옥호루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

  자선당은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 철거에 앞장섰던 오쿠라가 일본의 자신의 집으로 옮겨서 ‘조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설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이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은 자리에 오쿠라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정원에 버려져 있던 기단과 주춧돌은 1995년에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 왔으나 화재로 인해 훼손되어 자선당 복원 때 쓰이지 못하고 건청궁 동편 녹산에 보존하고 있다.
위로
제1유형
‘경복궁 들여다보기’ 사진은 경복궁관리소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경복궁관리소에서 제공하는 사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1’ 출처 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는 사진의 출처가 경복궁관리소임을 표시해야 합니다.
이용자는 사진을 온·오프라인 상에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으며, 2차적 저작물로 변경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