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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 영역

침전 영역
     
 
◀ 강녕전
왕의 침전에 해당하며
월대에서는 의례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행각에 연이어 있는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 강녕전 내부 천장 무늬
▲ 양의문
 
 
▲ 교태전 _ 왕비의 침전
▲ 교태전 천장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다.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8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그 목재를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헐렸으며 1920년 창덕궁의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강녕전의 공간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넓은 월대를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 월대는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내진연, 외진연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때에는 주변에 보계(補階)를 설치하여 보조하기도 하였다.
 
  ◀ 교태전에서 본 강녕전 일곽
  ◀ 자경전에서 본 교태전 일곽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강녕전과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다만 전면에 월대가 없는 것이 다르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공간구성 뿐만 아니라 집의 구조도 같은데 지붕꼭대기에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는 종도리를 두개 나란히 두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침전이 이와 같이 용마루를 두지 않는 것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문자도가 새겨진 강녕전 굴뚝
강녕전 북측 담장




만수무강(萬壽無疆) 무늬 ▶


◀ 천세만세(千世萬歲) 무늬
 
중건된 교태전 또한 강녕전과 같은 시기에 헐렸으며, 창덕궁의 대조전을 짓는데 활용되었다. 교태전 뒤쪽으로는 인공으로 조성된 언덕이 있는데 이 곳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산의 이름을 빌어 ‘아미산’이라 하였다.
 
 
▲ 연휘문에서 바라 본 아미산
▲ 교태전 후원 아미산
아미산에는 다양한 화초를 심어 화계를 꾸미고 교태전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굴뚝을 세웠다. 또한 호수나 연못을 상징하는 모양의 석함(石函)을 두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조성하였다.
 
  ◀ 교태전 담장
  ◀ 흠경각
세종 20년(1438) 장영실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흠경각에는 절기와 시간을
알리는 자동 천문 물시계로
알려진 옥루기륜(玉漏機輪)이
설치되었다.
 
 
▲ 굴뚝 동물문양전
▲ 굴뚝 동물문양전
이 굴뚝은 교태전을 중건할 때 같이 만든 것으로 6각형의 면에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짜 맞추어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 자경전에서 본 침전일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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