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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영역

     
 
◀ 근정전(국보 제223호)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영역에서는 조하를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국가의
중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 근정전에 오르는 하월대 답도
▲ 근정전 상월대 답도에 새겨진 봉황문과 당초문
 
▲ 근정전 동행각에서 바라 본 근정전 일곽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행사를 하는 곳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 정해진찬도병, “근정전진하도”
(丁亥進饌圖屛, “勤政殿陳賀圖”)
1887년, 견본채색, 10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왕대비인 신정왕후(고종의 양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한 진하의식
 
▲ 청동향로
근정전에서 의식이 거행될 때 왕이 어좌에 오르면 근정전
밖의 좌우 향로에 향을 피웠다
왕의 즉위나 외국 사신접대 등의 큰 행사는 근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신하들은 마당에 놓여진 품계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마당에는 돌을 얇고 네모나게 다듬은 박석이 깔려 있는데, 표면을 약간 거칠게 마무리하여 단조롭지 않고 빛이 반사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러졌다.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 담겨 있는 건물이다. 큰 행사 때 사용했던 근정전은 국가와 왕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다.

때문에 중층으로 꾸미고 기둥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도 4신상과 12지신상을 간결하지만 재치있게 조각해 놓았다. 정전의 안쪽은 바닥에 전돌을 깔고, 2층까지 높게 트이도록 하였으며, 북쪽 가운데에 임금님의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 세종대왕 즉위의례 재현행사, 경복궁 근정전
1418년 8월 10일 : 세종대왕이 근정전에서 즉위하여
백관들의 하례를 받은 날
 
▲ 근정전 천장의 칠조룡
 
▲ 근정전 마당의 품계석
근정전 의례거행시 신료들이 품계에 따라 도열하던 표석
 
▲ 근정전 월대 위에서 바라본 근정문
2단으로 된 월대에는 정면 중앙에 답도를 두어 봉황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는 작은 계석을 놓고 계석의 우석으로 해태를 조각했으며 계석 측면에는 당초문을 새겼다. 근정전 기단 상부에는 전석을 깔고, 전면 좌우에 청동 향로를 배치하였으며 하월대 동·서측 계단 옆에 무쇠 드므를 놓아 화재에 대비했다.
 
▲ 근정전 월대의 조각상
 
▲ 근정전 마당 차일고리
▲ 무쇠 드므
 
▲ 근정전 내부의 어좌
 
▲ 융문루 _ 국가를 문(文)으로써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짐
 
▲ 근정전 내부
 
근정전 동서 행각에 있는 융문루와 융무루는 정전 영역의 밖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왕과 왕세자, 궐내각사의 신료들이 보던 책을 보관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융문루와 융무루는 학문을 상징하는 문(文)으로써 다스림을 이루고 힘을 상징하는 무(武)로써 난을 안정시킨다는 뜻의 이름으로, 근정전이나 근정문처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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